[스크랩] "생활서예 수업을 마치고" -서예교육,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
"생활서예 수업을 마치고" -서예교육, 새로운 가능성의 발견-
"현대사회와 서예"라는 과목을 10여년동안 운영해왔다.
이 수업은 주로 서예에 관심이 있는 교양층 학생들을 위한 강좌였다.
시대상황의 변화라고나 할까. 최근들어 수업을 신청하는 학생들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100명을 넘었던 학생이 급기야는 20명이 되었고,
조금만 줄어들면 패강이 되는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업명과 수업의 내용을 대폭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생활서예" 강좌는 생각지 않게 많은 학생들이 신청하는 인기강좌가 되었다.
이번 수업을 통해 서예가 대학생들에게 즐거운 취미생활로 적합하며,
마음을 치유하는데 탁월한 효능이 있음을 학생들의 기말고사
답안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의 학생들은 자기표현을 즐기는 성향이 강하다.
MT에서의 새내기들의 춤은 TV에 나오는 가수들 못지않게 자연스럽다.
30년전 필자의 대학시절을 생각하면 도저히 비교가 안될 정도로 지금 학생들은
자기표현이 무척 발랄하다. 이번에 실습이 위주가되는 "생활서예"에서
학생들이 흥미롭게 서예에 다가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자기를 표현하는 성향이 강한
최근 젊은이들의 마음이 작용했다고 본다.
생활서예수업은 13회의 실기를 했으며, 기말고사를 붓으로 쓰게하여 수업을 마무리지었다.
처음 서예를 접하는 학생들이 2시간 이상 몰입하여 깨알같은 글씨를 붓으로 쓰는 진지한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부담감없이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글쓰기를 유도하기 위해 중간고사 이전까
지 도구를 오픈하였다. 자신이 소지하고 있는 연필, 볼펜, 수성펜, 붓펜을 사용하게 했고
글을 쓸때 느끼는 느낌에 충실하게 했다. 중간고사 이후로는 먹을 갈고 정식으로 서예수업
을 했다.
거의 수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루어진 사경수업에서 기적이 발생했다.
주저없이 붓을 휘두르던 학생들이 고려사경과 현대사경을 감상하면서 마음의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신라인들이 사경을 쓰기에 앞서 매일 향물로 목욕재계하고 성스러운 마음으로 사
경에 임했다는 이야기, 사경 한 작품의 제작기간이 한 두 달, 일년, 심지어는 화엄경 금니사
경의 경우 10년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학생들의 마음을 감동으로 이끈것 같다.
사경수업 이후부터 글씨에 밀도가 생기기 시작했다. 글씨를 표정도 더 진지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당시 학생들의 사경을 할 때의 숙연한 침묵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요즘 아이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펴는 어른들이 많다. 요즘아이들은 인내심이 없고 정
성이 부족하며 게으르고 등등..... 생활서예에 참여한 많은 학생들에게서 그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생활서예" 교양수업을 듣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붓을 잡아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백명에 달하다보니 일일이 지도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좋은 서예고전자료를 보여주고 스스로 알아서 글씨를 쓰게하고,
매 시간마다 학생들이 제출한 좋은 작품에 대해 강평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학생들의 서예수준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학생들은 이러한 스스로 찾아가는 학습을 매우 흥미로와했다.
이들은 글귀에 나타난 감동을 그림으로 옮기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비록 벼루를 꺼꾸로 혹은 옆으로 놓는 왕초보이지만
글을 쓸 때만은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자기를 펼치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프로그램마다 큰 변화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사경쓰기 시간이었다.
신라 사경사들이 사경을 대하는 정성, 그리고 고려사경과 현대사경에 이르기까지
거기에 담긴 정신적인 표현을 보고 학생들은 놀라와했다.
그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진지하게 몰입하는 모습을 대학강단에서 본 적이 없다.
서예가 지닌 정신적인 큰 힘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인위와 조작이 없기 때문일까?
학생들의 작품은 다듬어져있지 않았는데도 어색하고 거슬리는 부분이 없었다.
활짝 자신의 마음을 펴낸 작품들은 마치 치기(稚氣) 넘치는 아동미술처럼
희망과 역동하는 생명력으로 가득차 있었다.
시대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21세기로 불어닦친 과학문명은 인간에게 많은 수혜를 베풀어준 대신
인간성 상실이라는 심각한 위기를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서예가 인류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서예인들은 서예가 좋은 도(道)이자 예술임을 주장해왔다.
그동안 주장해왔듯이 서예가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좋은 문화라면,
현재 사회가 당면한 인간의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런점에서 올 봄학기에 학교에서 처음 개설된 "생활서예"는
지금까지 관심두지 않았던 대중들이 얼마나 우수한 창조성과 잠재능력을 가지고 있고,
또 이들이 얼마나 서예에 대한 흥미를 느끼는지를 발견하게 한 귀중한 시간이었다.